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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일상공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란? + 민주화운동 기념일

by 7★★★★★★★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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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일입니다. 199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매년 5월 18일로 제정되었습니다. 매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중심으로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1979년 12·12 사건을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계엄령을 통해 유신 체제를 연장하려 했는데, 1980년 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신군부는 정권 장악을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휴교령과 언론 검열 강화 등의 조치를 내리는 한편, 김대중과 김영삼 등 정치인과 재야 인사들을 대규모로 감금하고 국회를 봉쇄하였습니다.

5월 18일 광주 대학생들은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며 시위를 일으켰는데,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포함한 계엄군을 투입해 학생들을 구타하는 등 잔혹하게 진압했으며 이를 말리던 시민들까지 무차별 폭행하였습니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거세게 저항했으며 도시 곳곳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19일 계엄군은 장갑차와 헬기를 동원했으며 시민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으며, 21일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화가 차단되었으며 계엄군은 시민에 대한 폭행·살상을 자행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에 맞서 경찰서 등에서 꺼낸 무기로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7일 동안 시민들은 전남도청을 사수하고 시민 자치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전남도청 분수대에서는 매일 시민 궐기대회가 열렸으며 광주시민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계엄군 대표와 협의를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26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대대적인 무력진압을 감행하면서 시민군은 전원 연행되었으며 광주지역이 계엄군에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약 193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850명 이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 1987년 일어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에 관한 법적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1996년 광주시의회가 5월 18일을 ‘5·18 민중항쟁 기념일’로 지정하는 광주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1997년 2월 광주시는 ‘5·18 민중항쟁 기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건의했으며 같은 해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제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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