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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일상공유

[넷플릭스 영화] 영화 쎄시봉 (C'est Si Bon, 2015) .. 그리고 포크송

by 7★★★★★★★ 2020.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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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2015년 한국영화 '쎄시봉'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입니다.

어제 넷플릭스로 뭐 볼게 없을까 찾아보다가..

'쎄시봉'을 보게 되었는데요.

영화를 보던 중 와이프가 '포크송'이 대체 뭐야 라고 물어봐서..

저도 네이버와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고..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국내 포크송 역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공유드립니다.

영화 쎄시봉

참고로, 영화 '쎄시봉'은 대한민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 등을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그 시절을 풍미했던 추억의 통기타 음악과 한 남자의 잊지 못할 첫 사랑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포크의 뜻은 일반적으로 두가지로 나뉘는데요.
1. 어떤 나라 고유의 '민속' 음악. 민요 - Traditional Folk(트래디셔널 포크)라 불리는 뜻
2. 미국에서 시작된 간단하고 쉬운 구조의 노래들. - Contemporary Folk(컨템포러리 포크)

 

원래 포크송(folksong)이란 한국어의 '민요'에 해당하는 말이나,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포크송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영어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용례는 미국과 캐나다의 민요와 미국에 대한 영국계 민요 등, 앵글로색슨 국가의 민족민요를 가리키는 것이 대부분 입니다.

 

우리가 흔히 포크송이라 부르는 것은 컨템포러리 포크 음악(contemporary folk music)으로 20세기에 생겨난 대중 음악 장르 입니다. 각 나라와 지역의 민요에서 파생했으나, 전통민요(traditional folk music)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혔습니다.

 

우리가 흔히 ‘포크’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포크송은, 미국의 모던포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중가요 양식으로 포크송(folk song)의 원래 뜻이 민요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한국의 민요 전통 속에 놓인 것이 아니라 미국 민요에 바탕을 둔 미국 모던포크와 음악적으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모던포크가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과 비판적 사회의식 등이 강한 것에 비해, 한국의 포크송은 상업적 음반과 방송 활동을 거부하지 않았고 비판적 사회의식 또한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다소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어쿠스틱 기타의 소박한 반주의 노래는 모두 포크송으로 지칭하는 경향이 많으며, 실제로 팝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 혹은 컨트리송, 요들송, 칸초네, 심지어 록 형태의 노래조차 어쿠스틱 기타로만 반주하면 포크로 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1968년 청년문화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트윈폴리오나 뚜아에무아 등이 음악감상실에서 공연활동을 한 것에서 한국의 포크송은 본격화되었습니다. 한국의 포크송은 해방과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 그 중에서도 대도시 고학력자들의 취향이나 문화의식과 관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크송의 등장은 학생운동 등과 무관한 노래 취향의 세대교체로 보는 것이 합당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대중가요계의 상업주의와 상투성과의 거리두기, 기성세대의 취향에 대한 격렬한 반발의 태도를 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전의 어느 양식보다도, 사랑노래를 넘어선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담거나 상투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죠.

 

외국 노래의 번역·번안을 위주로 음악감상실이나 라디오에만 머물던 포크송은 1971년을 기점으로 창작 작품의 비중이 늘어나고 텔레비전에서의 인기몰이에 성공하는 등 확연한 성장의 모습을 보입니다.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 은희의 「꽃반지 끼고」가 대중적 인기의 견인차가 되고, 자작곡가수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서유석 사월과오월 등이 신작을 발표하기 시작하며, 대표적인 비판적 포크 작가로 꼽히는 김민기와 그의 중요 가창자인 양희은이 「아침이슬」 등을 발표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이로부터 1975년까지 포크송은, 김세환, 어니언스, 이연실, 김정호 등 인기 가수들을 양산하고 미국에서 성장하여 한국 풍토와는 이질적인 비판적 자작곡가수 한대수의 독집음반도 발매되는 등 승승장구 성장하며 청년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 포크송의 중요한 양식적 특징이 형성되고 정립되었습니다. 화성을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를 반주악기로 삼는다는 점, 가수 스스로 반주까지 연주하여 가창이 반주를 주도하고 가사의 중요성이 높다는 점, 절정부가 약하여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지 않고 절제하는 선율 특성을 지닌다는 점, 강하고 크고 화려하고 부유한 세상의 지배질서와는 다소 거리를 둔 약하고 작고 소박하고 가난하고 어린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 가수가 인위적으로 화려하게 꾸민 의상이나 무대매너를 지양하고 소박하고 비상업적이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등이 그것 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주류 대중가요계에서 포크송의 흐름이 쇠락하는 반면, 오히려 대중가요계의 바깥에서 포크송은 새로운 발전을 하였습니다. 금지곡이 된 김민기의 「아침이슬」, 「친구」 등은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민주화운동 내에서 새로운 재해석이 이루어지며 민중가요로 그 존재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의 포크송은, 대중가요계가 아니라 민중가요계에서 새로운 발전을 시작하게 되고, 수많은 신작들이 창작되고 널리 불렸는데요.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계기로 이 흐름의 일부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마을 등의 그룹으로 대중가요 시장 안으로 들어왔으며, 이로부터 활동을 시작한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이 1990년대에 솔로로 전환하면서 대중가요계에서는 쇠락한 포크송은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크송 [포크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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